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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ming of Colors

The Humming of Colors 포스터(KO)

참여 작가     김홍주 · 나비드 누르 · 디아나 체플라누 · 이영림

전시 기간     2024. 5. 10(금) ─ 6. 1(토)

오  프  닝     2024. 5. 9(목) 16시

장       소     ART CHOSUN SPACE

                  서울시 세종대로21길 30 1층

                  화 - 토: 오전 10시 - 오후 6시

                  일, 월 , 공휴일 휴관

​입  장  료     무료

빛깔의 흥얼거림: 색이 ‘빛깔’이 될 때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

미술 작품의 색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우리의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때의 색은 단순히 빨강(버밀리언), 노랑(사프론), 흰색(화이트 리드) 같은 이름의 물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가 어떤 고유한 방법에 의해 변화시킨 색을 뜻한다. 작품을 보는 관객의 시감(視感)에 깊게 호소하는 색을 말한다. 이런 특별한 색은 중성적인 물질 상태의 잠에서 깨어나, 작가의 생각과 작업 방법을 반영하는 ‘빛깔’로 승화하여 작품의 예술적 특성을 총체적으로 요약해 준다. “빛깔의 흥얼거림”은 네 명의 작가를 초대하여 작품들이 지니는 ‘빛깔’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이 전시는 작가의 사연이나 이야기 또는 작품의 주제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 전시는 색 안에 남겨진 작가의 작업 방법을 상상해 보면서 색이 붓칠이나 형태, 빛과 어우러지면서 어떤 ‘빛깔’로 변했는지를 관객과 함께 관찰해 보려고 한다. 

디아나 체플라누는 초상화와 정물을 통해서, 빛과 관련된 친숙한 일상 경험을 느끼게 해 주는 색을 표현한다.  “Lemon at the Window”를 보면 붓칠과 붓칠 사이에 가느다란 틈새가 보인다. 색으로 표면을 빼곡하게 덮지 않았다. 마치 색종이를 손으로 찢어서 모자이크를 했을 때 보이는 종이의 하얀 가장자리 같은 얇은 틈새들이 화면 전체에 퍼져있다. 체플라누가 색을 실현하는 방법은 그웬 존(Gwen John, 1876-1939)의 붓칠을 연상시킨다. 그는 아주 얇게 프라이밍(priming 바닥칠)을 했다고 한다. 특별히 그의 작품 “The Convalescent”(1910-20)를 보면 분필처럼 아주 건조하게 만든 물감을 붓에 조금만 묻혀 조금씩 리듬감 있게 반복해서 칠해 벽화 같은 질감을 만들어냈다. 그 그림에도 체플라누의 작품처럼 붓칠과 붓칠 사이의 살짝의 틈새들이 화면 전체에서 은은하게 반짝거린다. 묘사하려는 대상이 빛 속에 침잠해 있는 분위기를 포착하려는 것이 두 화가의 관심사였다. 체플라누는 창가에 놓인 레몬과 레몬을 감싸던 종이가 햇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펴듯 펼쳐진 모습, 화분의 식물을 묘사하는 동안, ‘빛의 언어 속’에서 색을 생각하고 ‘빛 안에서’ 붓을 움직인다. 일반 관객의 눈으로 볼 때 색은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 그림을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화가에게 색이란 빛과 그림자, 물감의 점도, 붓칠을 하는 방법 등을 둘러싼 복잡한 관계망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체플라누 작품의 특징을 관찰하면서, 그의 생각과 손이 이런 요소들 간의 어떤 결합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체플라누같은 화면을 묘사하는 말 중에 ‘화면이 숨쉬는 것 같다’라는 표현이 있다. 캔버스 표면이 화장을 하지 않은 채로 빛이 오가는 상태를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김홍주의 그림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바닥 칠(프라이밍)을 하지 않은 생 천에 짧고 구불거리는 선(線)을 반복적으로 그어 집적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캔버스에서 어떤 형태가 최종적으로 나타나든지 간에, 어디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알 수 없고, 어느 정도를 쌓았는지 알 수 없는, 선(線)의 불가사의한 엉킴이 그의 그림을 만든다. 그는 서예용 세필을 쓰는데 극도로 작고 섬세한 선들이라 언뜻 보았을 때 선들은 상상할 수 없이 무수한 집합 속에 ‘묻혀져’ 보인다. 화면에 나타난 형태를 보고 ‘무엇일 것이다’라는 가정을 한 채로 보면 묻혀진 선들을 절대로 볼 수 없다. 김홍주는 자신의 손은 붓의 끝이 닿는 캔버스 천의 올 하나하나, 심지어 그 올의 측면까지도 찾아가서 선을 긋는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손의 미세한 (감각적) 반응의 결정체(結晶體)이다. 마치 반도체 미세공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세심하게 붓칠을 하였다 하더라도 거기엔 놓친 틈새들이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체플라누의 그림에서처럼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감지하기 힘든 초(超)미세한 틈새들이 화면 전체에 숨어있다. 빛이 드나드는 구멍들이 있다.

김홍주의 작품은 드로잉과 회화를 혁신적으로 결합시킨 결과이다. 그는 색을 칠하면 사라지는 밑그림으로서의 드로잉이 아니라 독립된 장르로서의 드로잉의 잠재력을 재구성하여 드로잉을 회화로 발전시켰다. 드로잉은 작가의 감각과 손/바탕의 물리적 속성이 직접 친근하게 연결되게 한다. 또한 드로잉은 잠정적이며 탐구적이기 때문에 겹치고 얽힌 선의 실타래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작품에 이르도록 하는 특성이 있다. 김홍주는 드로잉의 영역을 확대하고 변혁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자신이 개척한 새로운 회화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다. 그의 작품에 사용되는 어떤 색깔이 아닌, 이 새로운 화법(畵法)이 김홍주의 ‘빛깔’을 드러낸다.   

나비드 누르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Mono no aware ness” 연작은 마블링(marbling) 기법으로 색을 얹힌 작품이다. 마블링 기법은 종이나 천에 여러 색의 대리석 같은 무늬를 찍어내는 기법인데, 누르는 오랜 세월의 실험과 노력을 통해, 측면을 깎은 메탈 바탕을 특별히 제작하고 유동적인 색을 다루는 개인적인 도구를 만들어 색을 얹히는 과정 자체를 바꾸면서, 자신의 창작에 맞는 새로운 마블링 기법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색들이 부유하게 물의 움직임을 잘 다루는 것이다. 물은 움직이면서 색, 형태와 대화를 한다. 계속 변하면서 잔꾀를 부리는 대화이다. 누르는 투명지에 물의 움직임을 선과 화살표로 그려서 어떻게 색의 항해를 해 나갈 것인가를 참작하기 위한 지도를 그린다.  또한 그는 여러 층을 반복해서 만든다. 어떤 때는 얹혀진 마블의 일부분을 긁어 파내어 다음 번의 층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 층이 얹혀지면 우연과 (자신의) 의식적 노력이 연금술적으로 결합한 이미지가 나온다. 누르의 색과 형태는 구름 속 같이, 안개가 낀 듯, 증발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만들던 과정에서 색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사라졌다가 다시 순간의 현재로 미끄러져 나왔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의 작품에 보이는 색은 눈에 보기 좋은 유행하는 색이 아니라 침연(浸軟)된 바위나, 손가락 끝으로 묻힌 얼룩, 투명한 베일, 할퀸 것 같은 선같이 느껴진다. 우리의 순간적인 상상이나 생각, 느낌에 살짝 와닿지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색이다. 이렇게 변화된 색의 언어가 그의 ‘빛깔’이 된다.        

   

이영림은 나무 패널이나 캔버스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그 표면에 색을 얹히는 작업을 한다. “Mutuals”은 벽에 건 비정형 평면 패널 앞 바닥에 추상적 입체를 같이 놓은 작품이다. 또 서로 다른 형태의 패널을 두 개씩 짝을 지어 놓기도 한다. 혹은 “Blue Shades”처럼  여러개의 패널을 특이한 구성으로 결합해서 배치하기도 한다. 표면에 그림을 그려 벽에 거는 캔버스나 나무 패널은 이차원의 영역에 속하게 되지만, 이영림의 작업 속에서는 색을 얹힌 추상적 형태의 패널은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약간의’ 입체성을 띠게 된다.  어떤 쌍의 패널은 서로 완벽하게 잘 맞는 커플처럼, 의기투합하여 비상(飛上)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패널 하나하나의 강한 개성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듯이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커다란 하나로서 보이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작가가 패널의 형태와 색이 서로 조응하는 관계를 갖도록 만들면서 나온다. 그는 붓의 움직임이 보이도록 붓칠을 하기도 하고, 두 가지 색을 섬세하게 교차시키면서 모노크롬적인 은은한 진동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의 질감과 완전히 일체가 되도록 칠하기도 한다. 그는 색에 자신의 표현적 의지를 ‘아주 쎈 강도’로 붓지 않고, 패널 형태에 어울리고, 패널에 말을 걸 수 있고, 더 나아가 패널을 거는 공간에 어떤 말없는 화음이 되어 주도록 색을 얹힌다. “Dipped” 연작은 이러한 그의 관심을 마이크로 한 차원으로 옮겨 놓은 작업이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작은 나무 조각들이 제멋대로 섞여 있다. 할 수 없이 서로 친구가 되어야 할 판이다. 이영림은 뜻밖에 만난 이 동행자들을 말 그대로 색 안에 ‘담그고’ 부분적으로 색을 덧칠한다. 색은 이때, 각 조각들의 차이와 대립을 묶어주고 한데 모아주어 그들 간의 불협화음을 부드럽게 펴주고 시각적으로 덜 아프게 해주는 매체가 된다. 색에 대해 이렇게 접근하는 이영림의 방법은 근본적으로 회화라는 ‘어머니’에 쓰이는 색의 언어와 매우 유사하다. 그의 작업은 회화를 만드는 색과 형태, 캔버스 안에서의 긴장과 조화의 언어를 좀 더 입체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하여 고유의 빛깔을 만든다.   

 

색은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재료로서 작업 과정에 따라오는 작가의 다양한 숙고(artistic consideration)의 풍부함을 드러내 준다. 색은 그러면서 작가의 손과 마음을 통해 복잡한 변화를 거친다. 애초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작품의 개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흡수된다.  관객을 끌어당기는 어떤 추상적인 힘으로 변한 ‘빛깔’을 이해하는 것은 미술 경험의 가장 생동감 넘치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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