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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비워진 모습

ACS(아트조선스페이스)는 2025년 5월 7일부터 6월 7일까지 이용덕(b. 1959)의 개인전 《PORTRAIT OF SEEING : 비워진 모습》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랜 시간 독창적인 조형 기법으로 시각과 인식의 구조 그리고 시간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탐구해 온 작가의 신작 20여 점이 공개되며 ‘비워진 모습’을 통해 감각과 인식, 실재와 환영 사이의 그 애매모호한 경계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이용덕은 음각으로 파낸 공간에서 양각처럼 보이는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내 고정된 형상 대신 빛, 시점,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 조형 구조를 제시한다. 이는 작가가 창시한 ‘역상易像조각(Inverted Sculpture)’ 개념과 직결된다. 역상조각은 입체를 안으로 파내어 오히려 돌출된 양각처럼 보이도록 구성된 반전 기법으로, 음각임에도 양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부조 형식이다. 기존 조각이 물리적 부피와 고정된 시각을 중시했다면, 이용덕의 작업은 이를 해체하고 감각의 환영과 다층적인 인식을 유도한다. 관객은 고정된 해석이 아닌, 자신의 위치와 시선에 따라 조각의 형상을 자율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작가의 조각은 단일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으며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적 사유에 대해 질문한다. 이는 음각과 양각 사이의 애매함을 유영하게 하고, 감각과 인식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차원의 실재를 마주하도록 이끈다.

 

이용덕의 작업은 대게 일상에서 포착한 장면을 바탕으로 하며 일부는 이미지 매체를 통해 수집한 순간들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인물의 외형보다 상태에 주목하여 걷는 자세, 앉아 있는 형상, 지루함이 묻어나는 표정 등 찰나의 몸짓과 분위기를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땅, 물, 하늘이라는 근원적인 공간 위에 인물의 순간적인 존재감을 부유시키며, ‘원초적인 빈 공간’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탐구를 드러낸다. 관람객은 이 공간 위에 자신만의 정황과 해석을 덧입히고 감상의 여백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 속 색채는 단순한 회색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옐로우, 레드, 블루 등의 얇은 레이어가 겹쳐진 것으로 강한 대비보다는 비슷한 계열의 색들이 섬세하게 얹혀져 작품에 잔잔한 울림을 더한다. 이는 인물의 순간적 정서와 시간, 공간의 서사를 내포하며 고요하고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또한 수직과 수평의 기본적인 선 구조는 바다의 지평선과 인간의 직립성을 연상시키며 가장 근원적인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PORTRAIT OF SEEING : 비워진 모습》은 물리적 실체 너머에서 일렁이는 환영을 마주하게 하며 인식의 구조에 대한 깊은 사유를 자극한다. 관람객은 눈앞의 형상이 실재인지, 혹은 감각이 만들어낸 환영인지를 탐구하며 조각이 감각의 거울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ACS는 이번 전시를 통해 감각과 인식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며 고정된 시각을 넘어서고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용덕 작가의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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